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공동체(사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라 하겠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그 아저씨, 참 발도 넓네. 거 먹고 살기 힘들던 때가 아니니 이것 저것 신경쓸 것도 참 많으셨소.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저런 생각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때워야 하는거 보면, 철학이란 어떻게 보면 참 배부른 학문이야.
뭐, 암튼.
사회적이라는 단어에 치중한 의미 해석 아닌가. '사회적' 동물 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동물' 로 해석하면 어떻게 되려나. (어차피 말장난이긴 하지만.) 공동체를 구성해서 더 많은 욕구 충족을 바라는 것이 사람이려나. 어쩌면 그게 맞는 말인 것도 같은데. 그러니까 전쟁이 끊이질 않지.
사람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려면 먼저 저 사람이 나랑 손을 잡을 것인가 먼저 따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의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손을 잡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떤 이름아래 묶이지 않고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접근하기에는 무한한 선의 외에는 모두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관계를 맺었다면, 오래 갈까. 득이 되지 않으면 떠나고 득이 되면 더욱 친밀해져야 하는 것이 서양애들이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란 동물은 여기서 참 애매모호한 변수에 의존한다.
믿음과 애증.
설령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아도, 아니, 실이 되더라도 믿음이 있다면 같이 있을 수도 있고, 득이 된다 하더래도 감정의 문제 때문에 거리를 둘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사람들 (다른 나라에도 분명 비슷한 개념이 있겠지만, 난 모르겠다.)은 참 멋진 말을 만들어냈다. 미운정, 고운정으로 말하는 정이라는 거. 미워도 미운게 아니고, 고운 것도 곱다고 하지 않는, 은근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드러나지 않는 표현 방법과 감정, 정. 그것 또한 한국사람들의 인간관계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일 것이다.
그렇게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그럼 관계라는 것 자체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내가 상대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느냐, 그것을 이해하느냐, 거꾸로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느냐, 그것을 이해하고 있느냐가 관계의 기본이 아닐까 싶다. 상대를 알아야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설정할 방법을 알 테니까 말이다.
그럼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아는 거야 내 모습도 중요하지만 어찌 됐건 그 사람의 몫이고, 내가 상대방을 아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내가 상대방을 알고 이해한다고 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까. 25년 인생을 살아왔으니, 짧다고만 할 수는 없는 시간을 살아왔다. 머리에 철 들고 나서 지내온 것은 몇 년 안 되겠지만, 찰나같은 목숨 살면서 그 정도면 적은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 동안 느낀 것은 첫 인상도 중요하지만, 역시 한국사람은 장맛처럼 두고 봐야 한다는거.
예전에는 첫 인상을 참 중요시 여겼다. 아니, 사람을 보면 선입견을 가지기부터 했다.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하고 기억에 박아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본 사람이라는게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많아서 신뢰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 이후 취한 방법은 선입견을 기반으로 해서 몇 달간 지내는 것. 내 선입견이 맞다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고정되는 것이고, 아니면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그닥 믿을만한 방법은 아니었다. 언제고 돌발요인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는 게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내가 믿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누게 되었다. 그 근거가 어찌 되었든, 내가 믿는 사람이라면 모든 말과 행동을 믿는다. 거꾸로 내가 믿지 않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무슨 행동을 해도 이 사람이 왜 이럴까 하고 꼭 한 번 생각해본다.
그러다보니 믿음을 가지는 것이 참 중요한 일이 되었다. 보통이라면 내가 상대방을 믿으려면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믿게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어렵게 살기는 싫었다. 믿음을 가지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 가증스러워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느낌. 그래, 나쁘게 표현하면 선입견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지만, 지금은 가장 편하다. 뒤통수를 치더래도 믿을 것이냐, 하면 할 말 없다. 내가 믿기로 한 사람이면, 그 사람도 나를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뒤통수를 친다면, 내가 맞을 짓을 했던 거겠지. 그저 나는 내가 믿지 않는 사람들만 의심하고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머리 아프게 이거 저거 재기 싫었다. 그냥, 단순하게. Simple is Best 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운 정이면 미운대로, 고운 정이면 고운대로.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아둥바둥 사는 것보다 훨씬 편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