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喜一悲 에 해당하는 글206 개
2006.12.05   불길한 느낌은 항상 잘 들어맞는다.
2006.05.22   이현세 작가님의 충고
2006.05.11   아버지...아버지... 1
2006.05.08   대추리에서의 공권력 집행에 대해서
2006.04.25   강도영 작가가 존경스럽다.
2006.03.24   왜 공부를 안 할까?
2006.01.10   200% 동감이란...
2005.10.19   노라조 싸이
2005.10.02   만화
2005.07.21   다음 블로그는 Next Generation Blog인가?
2005.07.20   걱정군의 편지
2005.07.18   사이버 친구의 의미
2005.07.12   칫, 도대체 경제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건지.
2005.07.04   배트맨 비긴즈 with 병선
2005.07.03   첫사랑이란
2005.07.01   이 시대의 '學生'들에게 -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2005.06.13   헤헷, 전역했다.
2005.06.08   대한민국 현역 육군으로서의 마지막 시간
2005.06.07   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라와있는 것.
2005.06.05   낯선 블로그 돌아다니다 보면...
2005.06.05   내가 아는 서태지
2005.06.03   술 한잔, 그리고 장남 이야기 with 아버지
2005.05.27   핸드폰 샀다~
2005.05.22   영화 남극일기
2005.05.11   마지막 포상휴가, 부대복귀
2005.05.09   일기장을 만들다.


불길한 느낌은 항상 잘 들어맞는다.
一喜一悲 | 2006. 12. 5. 03:57

내게는 불길한 느낌이 더이상 잘 들어맞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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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주었느냐. 님이 떠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떠나는 것이 나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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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니면...나는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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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번 만큼은 내 느낌이 틀렸을꺼야. 사랑놀이 따위 이제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낸지 오래지만, 그래도 난 아직 덜 굳었다구. 확인할 용기는 나에겐 남아있지 않아. 애써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야. 슬픔위에 세워진 기쁨이라면, 모진 바람에도 더 견뎌야 하잖아. 아직은, 아직은 아니야...


그렇지, 경진아, 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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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이기를 정말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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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작가님의 충고
一喜一悲 | 2006. 5. 22. 06:55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출처 : 방배동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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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아버지...
一喜一悲 | 2006. 5. 11. 01:04

예, 저 맏아들입니다.


오늘도 아버지랑 이야기 많~이 하면서 참 가슴이 답답합니다.


큰아들은 이번 1년 휴학을 했지요. 아버지 하시는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면서, 도움이 되고자, 또 저 자신도 그 열매의 맛을 좀 보고자 휴학을 했습니다. 지금은요, 예, 지금은 사실 많이 어긋나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 입장이었어도 자식에게 참 많이 미안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들의 좌우명이 어떤것이었습니까. '돌이킬 수 없는 일은 후회하지 말자.'입니다. 제가 휴학을 했고, 이제와서 시간을 되돌려 복학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부담도 가지지 않습니다. 어차피 전 1년 '휴학'을 했구요. 이제 1년 더 쉬기는 참 그렇습니다. 마지막이지요.


자, 이 시간에 저의 다른 친구들은 공부를 하겠지요. 그 동안 저는 '노는'거구요. 사실 이 아들도 지금 이 시간이 아까워 미치겠습니다. 그래서 뭐가 되든 영어고, 컴퓨터고, 지금 이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니까요? 절대 미안해 하실 필요 없어요. 내색은 안 하시지만 느껴지는 걸 어쩝니까. 미안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너무 그렇게 강조하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이 시간에 자식이 지금 아니면 다녀오지 못할 여행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도 못마땅하십니까?


어차피 1년 쉽니다. 맘편히 좀 다녀오고 싶어요. 하지만 오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건, 지금 여행을 다녀와서 나중에 조금이라도 내 기대에 못 미쳐봐라, 지금의 너의 계획과 행동에 대해서 질타를 할 것이다. 분명히 아비는 너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여행을 가라고 했지 놀러 가라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씀하시겠다는거 아닙니까. 결국에는 이 아들이 올해 1년을, 그리고 당신께서도 분명히 아시겠지만 앞으로도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 결국에는 네 인생에서, 이 아비의 뜻을 거슬러 생활할 생각을 말아라. 만일 그리하면 나는 언젠가 내가 정한 한도내에서 움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너를 질타할 것이니까...라는 것 아닙니까.


동생에게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러더군요, 아빠는 언제나 아빠의 기준으로만 생각해서 우리를 끌어가려 한다고. 결국 우리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려면 아빠가 먼저 우리를 내칠 것이라고. 저는 그랬습니다. 아니다. 아빠가 그러지 않았느냐.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거라고.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너의 자유와 아버지가 요구하는 책임을 두고 협상을 해야 한다. 협상이라는게 무엇이더냐. 둘다 100% 원하는 걸 보는 것이 눈꼴 시리니까 서로 30%씩 깎아서 70%만 이루더라도, 혼자 70%만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70%만 이루는 걸 합의 보는 걸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더냐. 양쪽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100% 다 맞추겠는냐. 서로 양보할 건 양보해서 어느 정도는 인정해주는 것이 협상 아니냐. 그리고 네가 원하는 자유와 아빠가 요구하는 책임은 다 맞추기 힘드니까 협상을 통해서 조절을 해야되는 것이 아니냐...


하지만 전 오늘 참 힘겹다고 느낍니다. 당신께서는 '협상'이라는 말을 정말 싫어하시지요. 어찌 부모자식간에 협상을 하려는,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하느냐고.


아버지.


자식은 부모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아버지께서는 제게 살아가는데 정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몸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너무 힘들군요. 당신께서 바라는 아들이 되고자 하는 저와, 제가 하고싶은 것을 하려는 저와 스스로 협상하는 일은, 정말이지 미칠것만 같습니다. 이기적인 건가요. 전 지금 제가 하고 싶은대로 살아본 적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답답합니다.


갑자기 예전에 들은 말이 생각이 나는군요. 일전에 어머니하고 이모하고 사촌동생하고 밥 먹으러 갈 때였습니다. '오빠는 참 소박한 데에서 기뻐한다.' 지금은 무엇에 기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말은 기억이 나는군요. 제 가슴속을 후벼팠던 이야기니까요. 왜 나는 이런데서 기뻐해야 하나. 오죽 다른 곳에서 기뻐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으면 스스로 이런 돌파구를 만들어 기뻐해야 하는 내 모습을 다른 사람까지 발견한다는 건가. 이러지 않으면 미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아버지께서 이 글을 보지는 못 하시겠지요. 그만큼 인터넷을 돌아다니지 않으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게 된다하더라도 그 때는 이미 이 일에 대해서 충분히 지난 후일겁니다.


이번에는 저 하고 싶은대로 하겠습니다. 물론 말씀도 드리겠지요. 만일 제 뜻을 반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아버지께서 내 놓으시는 방법 또한 반대하겠습니다. 이번만큼은, 제발 이번만큼은 당신의 생각대로 아들을 이끌으려 하지 말아주세요. 저도 제 인생에 있어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제 뜻대로 살아보는 적이 있어야되지 않겠습니까? 그 때가 지금 아니면 언제 있겠습니까? 절 막으신다면, 그것이 제 명이려니, 하겠습니다. 그냥 제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제게 주어진 운명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모두 포기하지요. 언제는 아버지 뜻을 거스른 적이 있었습니까.


왜 그리 생각하냐고 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버지께서 더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저 큰아들은 이미 '장남'이라는 역할이 너무나도 몸에 배어 당신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그런 '올바른' 아들로 자라났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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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에서의 공권력 집행에 대해서
一喜一悲 | 2006. 5. 8. 06:26

난 84년생이다.

데모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왔고, 육군으로 병역의 의무를 마쳤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그냥 그런 막연한 불안감(불만일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도대체 내가 태어날 당시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우고 지금에 있어서는 한총련(한국대학생총연맹)의 의견이나, 보학연(보수주의학생연대)의 의견을 모두 살피면서 내 스스로 판단해보려 하고 있다.


그 와중에 '백골단'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무자비한 시위 진압. 말 그대로 '반병신'을 만들어 놓는 합법적이지만 남용된 폭력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런 조직을 운용하는 것이 나라냐!!!!'

라는 격렬한 감정이 치밀었다. 그 당시 백골단은 정말 '악'이었던 것처럼 보여졌다.


그러나 지금. 난 '백골단'이 부활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 당시처럼 무조건적인 폭력은 안 된다. 해산을 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군사정권만으로 족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제는 '불법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오히려 이전보다 강한, 그래서 불법시위대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집단의 뜻을 알리고 동조하는 이를 만들어 강력하게 호소하는 것이 시위의 목적이다. 충.분.히. 대화로 가능하다. 왜 국가 공권력에 맞서려 하는지 모르겠다. 왜 시위대 스스로 법을 어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법대로 하면 자신의 뜻을 정부에서 무시하나? 가이드라인 넘지 않으면 무시하는것이 요새 정권인가? 지금은 집단의 뜻을 알릴수 있는 방법이 무수히 많다. 불법폭력 시위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자들에 대해서 베풀 자비가 어디 있는가? 그들은 이미 '범법자'이다. '범법자'가 법의 처벌을 받지 않으려 한다면 무력이 동원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백골단'이 아니라, 폭력시위대들의 피에 의해 '적골단'이 된다고 해도 나는 공권력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공권력이 무시된 나라가 뜻하는게 무엇인가. 범법자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공권력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면서도 무엇보다 강해야만 한다. 악은 더욱 강한 힘으로 제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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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제가 다음 토론방에 올린 내용입니다. 그런데 아래와 같은 답글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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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년 생이시라구요? 그럼 대학생이시면 03 학번이시겠군요. 거두절미하고 조금 무례하게 여쭙겠습니다. 귀하는 민주국가의 국민이 맞습니까? 백골단을 부활 시켜요? 정신이 있는 겁니까? 백골단이 뭔지나 알고 이야기 하시는 겁니까? 불법 폭력 시위요? 전경 115개 중대 13000 여명 규모입니다. 그냥 인터넷 게시판에 숫자글이나 쓰니 쉽사리 인식이 안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5월 4일 당시 대추분교 안에서 끝까지 지키시던 분들이 1천여명이 안됩니다. 저 대규모의 병력이 무장을 갖추고 달려들면 그 천명이 어찌 되는지나 아시고 이야기를 하십니까? 실제로 5월 4일 대추분교에서는 경찰과 시위대의 마찰이 있었던 시간은 1시간 여 정도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부상자가 나왔구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시는 겁니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국방부가 주장하는 군사시설보호구역법은 당시로도, 그리고 지금도 전혀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행정대집행법도 인적자원에 대한 터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강제퇴거법률에 의거해도 경찰과 용역이 개입할 수 없습니다. 물론, 국방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헌법 위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지요? 국방부, 경찰, 용역이 같이 나섰습니다. 계엄사항도 아닌데 군대는 민간 대상으로 작전을 전개했고, 경찰은 법적 근거 없이 폭력을 자행했으며, 용역은 거기 있을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진상이 어땠습니까? 뭐요... 백골단을 부활시켜요? 정말이지 젊은 사람들의 보수화는 기이할 지경입니다. 이건 아닙니다. 귀하의 생각 하루 속히 바꾸시길 감히 무례하게 충고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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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다시 한번 올린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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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백골단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그만큼 공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더욱 강력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뜻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저 또한 (빠른 84년생이고 02학번입니다.) 대한민국의 육군으로 병역의무를 마쳤습니다.. 전경 115개 중대 13000여명 규모면 어느 정도인지, 그들이 내보낸 1천여명의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부상자가 나왔다는 이야기와 관련 사진등을 통해 어느 정도의 강도로 진압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은 미군기지가 이전될 장소입니다. 국군의 주둔지가 아니라 외국군의 주둔지를 확보하는 중인 것입니다. 단순히 민간인 지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 이주시키는 것은 행정기관의 조치만으로 충분해야 합니다. 게다가 그곳이 인정하긴 싫어도 우리나라 안보의 핵심이 되고 있는, 그리고 그렇게 될 미군기지가 들어설 장소라면 군병력이 나서기 이전에 경찰력으로 그리고 그전에 행정조치만으로 해결이 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행정조치만으로는 이주민의 요구와 맞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정부에서 국민을 먼저 생각하여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했으나 미군기지부지조성에 난제가 있어 더 이상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경찰력이 투입이 되어 행정집행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미군이 가지는, 그래서 미군기지조성에 있어 수반되는 군사적, 외교적 중요성을 망각한 인원들이 몰려들어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주민의 요구사항 관철을 요구하며 그곳에서 나오지 않은것이지 않습니까? 이것은 분명 행정집행에 대한 반대의사 표명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정부는 반드시 그들에게서 요구사항을 듣고 대화로 풀어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반대입장을 올바른 경로를 통해서 접수시켰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대추리에서는 어땠습니까? 그들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공권력에 저항했습니다. 누가봐도 이것은 명백히 불법폭력시위입니다. 미군기지조성의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인지하는 상태에서의 평화적 시위였다면 지금 저는 정부를 탓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공권력에 [위협]을 가한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인 [법]을 거슬러 그 집행되는 공권력에 대항하는 그들은 [범법자]입니다. 하물며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에 생명의 위협을 가한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향하는 법 집행의 칼날에 [자비]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게다가 그곳은 군사시설이 들어설 부지입니다. 부지 조성이전에 군이 투입되어 혹시 모를 타국의 정찰과 친북좌익세력의 방해 및 공작 의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입니다. 더욱이 군은 대추리에서 그들의 무력을 [절대] 사용하지 말 것으로, 다시 말해 수동적 진압의 자세를 취할 것을 명령받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먼저 위협을 가하고, 철조망으로 가설했으나 명백히 군사시설인 곳에 무단으로 침입한 쪽은 어느 쪽이었습니까?


평화적으로 해결을 하려는 국민에게 정책을 강요하기 위해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권력이 사용된다면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아니, 그런 정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세워져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불법을 자행하며 공권력에 대항하는 세력에게는 제가 말했다시피 백(白)골단이 아니라 그들의 피로 물든 적(赤)골단이 투입된다 하더라도 그건 정부가 백번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국가라 하셨습니다.


감히 여쭤보지만, 민주국가에서 범법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공권력이 막지 못 한다면, 어찌 될거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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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영 작가가 존경스럽다.
一喜一悲 | 2006. 4. 25. 23:14

"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라는 말이 있다.


중요한 일을 진행할 때 현재의 행위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명확히 판단할 수 없으나 집행하는 집단이나 개인의 의지로 강행해야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점점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봐지고, 후손들은 양쪽의 시각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객관적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지금 현재의 행위에 대해서 당장은 책임을 지지 않고, 무조건 자신의 행위를 옳다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때문에 저 말을 하기 전에 스스로, 혹은 집단 내에서 정말 옳은 것인지 그들의 기준이 어쩔 수 없이 반영이 된다고 해도 여러 방면에서 고민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전두환의 경우에는 저런 말조차 없이 넘어갔다. 오히려 힘을 쓸 수 없는 국민의 입장에서 이것이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고 끓는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분노의 열기는 대한민국 사람의 가슴속에 불씨를 담은 숯덩이처럼 남아있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기에는 아직 그들의 세력이 남아있기에 망설이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넘어가야만 하는가 하고 체념한 상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풀(강도영 작가의 필명)은 아니었다. 아직은 그들 세력의 보이지 않는 위협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다시 그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나서라면 걱정없이 도마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문제를, 그렇게 식어버릴 수 밖에 없는 문제를 그는 당당히 '현재의 심판대'위에 다시 꺼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 불꽃에 자신이 타 들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그것이 두려워 표출하지 못했던 문제를 다시 상기시키는 용기를 보여주는, 그런 강도영 작가가 나는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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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쇼킹만화가님, 이쯤에서 당신도 무언가 보여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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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부를 안 할까?
一喜一悲 | 2006. 3. 24. 00:57

이젠 알 거 같다.

돈도 많이 버는 것도 아닌, 그런 직장에서 일을 하다보니까 너무 공부가 하고 싶다. 안철수씨는 몸이 상할 정도로 공부했는데, 그 맘을 알 거 같다. 회사에서 아무리 피곤하게 일하고 나서도 공부를 하게 되는 거 보면, 정말 왜 예전엔 이런 기분을 몰랐을까 싶다.


머릿속이 점점 말라가는 느낌이라고 하면 적당할 거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사라지는 기분. 끔찍하다. 이번주에 학교를 두번 갔다왔다. 역시 과제랑 도서관, 이제는 동방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동아리의 존속이 불안정할 정도지만, 자기 공부 하겠다는데.


일단 동아리에서 스터디를 시작했다. 얼마나 같이 할 지는 몰라도, 휴학생으로서 후배들한테 얼마나 해 줄 수 있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저 열심히 하고 싶다.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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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동감이란...
一喜一悲 | 2006. 1. 10. 21:43
200% 동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월매나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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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린블루스 성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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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조 싸이
一喜一悲 | 2005. 10. 19. 06:57

싸이월드/

정애 : happynewyear

민영 : 77717702

세인 : sengseng

재남 : jnlee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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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一喜一悲 | 2005. 10. 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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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블로그는 Next Generation Blog인가?
一喜一悲 | 2005. 7. 21. 20:08

요새 Daum 블로그를 다녀보면 블로그가 가지는 '개인에 의한 정보생산'이라는 특징이 시스템의 문제로 이렇게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스크랩이라는 미명하에 나 자신의 글이 아닌 남의 글로 가득 채우고서 자신의 블로그에 사람들이 와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블로그의 방문자수를 늘리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광고나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적인 블로그의 모습은 이렇게 남의 이야기를 퍼트리기만 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는 건가 하고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사실 현실속에서 자기표현에 익숙치 않았던 사람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이것만이 '개인에 의한 창조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 장애물이 되는가? 아니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던 사람들이 블로그라는 시스템에 적응하는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먼저 블로그에 올려진 자신의 글이 얼마나 많이 읽혀지는가에 따라서, 그리고 자신의 글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의 논쟁을 통해서 창조적 작업에 대한 의욕이 상승할 수도 있고 저하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Daum블로그 가 제공하는 시스템은 그런 과정을 장려하는가? 내가 볼 땐 전혀 아니다.


태그를 통한 검색은 정말 괜찮은 시스템이다. 하지만 그것이 활성화가 되었는가? 짐작이지만 개인의 글을 태그로 분류하고 그 방대한 양에서 분류된 정보에서 알짜배기를 찾아가게 하려는 Daum 기술팀의 의도는 빗나간 것인가?


그렇다면 트랙백은? 이미 Daum뉴스 에서 몇 글자 안되는 덧글을 통해서 하나의 정보에 대한 다수의 의견이 감정적으로만 흐르고, 결국 기사들도 선정적으로 흐르게 되는 모양새를 보지 않았는가. 정말 알짜배기 의견들은 쓰레기 의견에 밀려서 수많은 클릭을 통해 찾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지 않았는가. 하물며 개인의 블로그에서임에랴. 의견과 트랙백 두가지 수단 모두 존재하지만 편리하게 글을 남길 수 있는 의견 때문에 복잡한 트랙백 과정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의견을 표출할 기회가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에서 Daum이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배우면서 Daum을 알게 되고 Daum에서 익숙해진 UI를 통해 다른 서비스도 알아나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Daum 에서 여러가지 방식의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편리한 방식으로 제공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그것이 단점에서오는장점을 없애버린다면 결국에는 장점에서오는단점만이 남을 것이다.


Daum 이 예전의 광고에서처럼 정말 Next Generation 이 되려면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발 빠르게 제공하는 것보다는, 사이버문화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고 한국인의 정서 및 행동양식과 잘 융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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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군의 편지
一喜一悲 | 2005. 7. 20. 19:59

아, 처음 뵙겠습니다. 전 '걱정'이라고 합니다.

저는 처음 뵙는게 아닌데 아마 모르실 겁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하지요. 지금은 그냥 놀고먹고 있습니다. 예전에 친구랑 재밌는 카페에 놀러갔는데, 전생체험을 시켜주더군요. 그런데 저는 전생에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왠지 힘이 엄청나게 세었던 것만 기억이 나는군요. 언젠가 무심결에 들었는데,'널 낳아서 걱정이다'라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임꺽정이라는 사람의 이름은 참 친근해요. 다시 말하지만, 이유는 모르겠어요.


뭐, 그거야 어찌 되었든지간에. 요새 어떤 두사람이 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더군요. 한 사람의 이름은 '불안'이고 나머지 한사람의 이름은 '희망'이에요. '불안'이라는 사람하고 있으면 그렇게 편할수가 없는데 '희망'이란 사람하고 있으면 하아...답답해서 제가 먼저 자리를 피하고 맙니다.


 아 글쎄, 들어보세요. '불안'이라는 사람은 제가 심심하지 않게 이것저것 모든 일에 저를 부르거든요. 제가 또 워낙 친절해서 그 사람이 부르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지요. 저도 그사람이 심심하지 않게 제 친구들인 '짜증'하고 '긴장'을 불러오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4명이서 오손도손 잘 지내는데, '희망'이란 사람은 그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왜 제가 있을 자리를 주지 않는데요? 제가 다가오면 '아니, 넌 없어도 돼.' 라면서 저를 쫒아내고는 그 심심한 '다 잘 될거야'에서만 놀잖아요. 그뿐인가요? 어디서 이상한 '긍정적'이라는 개를 데려오는데, 하아...저만 보면 무지하게 짖더라구요.


흠, 초면에 주저리 주저리 제 이야기만 늘어놓았군요. 아무튼, 몇일전에 저를 불러서 아침부터 같이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매정하게 내쫓으시더군요. 이거, 상당히 맘 상하는 일이라, 다시는 상종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 제발 부탁인데, '희망'이라는 사람은 닮지 마시기를. '불안'이라는 사람, 얼마나 멋있는데요. 저랑 같이 있는게 좋으시다면, 앞으로는 '불안'이라는 사람을 닮아보세요.


그럼, 다시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하면서, 이만 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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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친구의 의미
一喜一悲 | 2005. 7. 18. 12:05

제 생각을 최대한 정확히, 빠르게 표현하기 위해서 경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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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공간에서의 대화를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으로 확장하려면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걸 먼저 확인해야 한다. 글을 이루는 문자, 사진과 그림 혹은 동영상 같은 이미지, 단순한 시스템 사운드부터 인터넷방송국의 음악에 이르는 소리들. 아직 현대의 기술이 촉감과 미각, 후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외의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통해서 우리는 누군가와 교류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류가 바탕이 되어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또 그에 대해 응답하면서 서로와의 관계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이렇게 서로간의 교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것이 쌍방향이든, 단방향이든간에 상관없이 우리는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서로를 인지하면서 사이버공간에서 또다른 사회를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인간의 감성적인 영역에서의 사랑이나 우정 또는 증오, 그리고 이성적인 측면이 강한 협력과 반목 등이 그것이다. 이런 관계들은 개인의 감성과 이성에 바탕을 두지만 서로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것들의 표출 방식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직접적인 대면을 통하여 여러가지의 표출방식을 대할 수 있으며, 또한 수시로 변하는 모든 방식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사이버공간에서는 제한된 수단을 통해서 (내가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 하는)제한된 시간에서만이 가능하며, 이것은 곧 상대방의 의견을 한번 걸러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매 순간이 중요한 감성과는 달리 걸러진 의견은 이성을 필히 동반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이버공간에서의 관계는 감성보다는 이성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릭과 덧글과 같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위한 의견표출은 개인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그 방향과 내용은 개인의 이성수준을 대변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따라서 현실세계와 사이버공간에서의 관계는 인간 사이에서의 관계라는 교집합을 갖지만 그 관계를 만들어가는데 있어서 개인 스스로가 끼치는 영향과 수단에 있어서 지극히 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현실세계와 사이버공간에서는 각각의 관계에 대한 문화가 구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사람에게 있어서의 사이버공간의 급격한 확장은 이러한 문화의 생성을 소수가 아닌 다수가 이끌어 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다수의 행동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1인의 악행을 99인의 선행이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참여형' 문화형성이 일어나는 곳이 우리나라의 사이버공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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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 도대체 경제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건지.
一喜一悲 | 2005. 7. 12. 19:51


 

조선일보 경제 1면이다.


파랗게 표시해놓은 곳에서는 주가가 올랐다고 좋아하는데,

빨갛게 표시해놓은 곳에서는 서민들이 싼것도 못 사게 되었다고 난리다.




'소주에 삼겹살'은 서민층의 메뉴판에서 사라졌다.

'포장마차'는 이미 돈 없을때 가는 술집이 아니다.

'1,000원'의 가치는 버스비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셋트메뉴'로 무장한 영화관의 팝콘판매대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클럽'에서 놀자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10,000원'권 지폐도 귀찮다고 카드나 휴대폰으로 결재하는걸 쉽게 본다.




소비 양극화에서 소비 단극화로 갔다고?

Current income 이 줄어들면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왜, 해결책은 말해주지 않는 것이지?

나 같은 사회 초년생들은, 무엇을 이정표 삼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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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with 병선
一喜一悲 | 2005. 7. 4. 00:18


 


하핫, 병선아, 너 덕분에 영화 재밌게 보고왔다.


오랜만에 딱 내 스타일의 영화를 보고왔어! 내가 원하는 직장이란 바로 그 웨인기업의


시제품 만드는 부서, 바로 그런 곳이지! 그리고 닌자수업에서의 그 절도! 으~메 이런!!


그런게 바로 남자의 꿈 아니겄어야~


퐈핫~!! 내가 원래 좀 이런 과장된 유치찬란빤스영화를 좋아하잖냐.


그래도 볼건 본다구.


'과거 소년시절의 브루스는 아직 네 안에 남아있을지 몰라도, 지금의 너를 말해주는 건 현재의 행동이야.'


하핫, 이 정도면 훌륭한 기억력~!! *.*b


글쎄다, 니가 나보고 변한게 하나 없댔지. 너도 마찬가지야~ㅋㅋ 우리 둘다 변한게 없네요.


하지만 과거의 소년들끼리 만나서 몰랐던거지, 우리의 행동을 누군가가 바라본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과거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더래도 변한게 없달까?


글쎄.


우리는 변했어.


인정하기도 어렵고, 느끼기도 어렵지만,


우리도 이제 어른인게야.





그런 의미에서.


못 물어본건데,


넌 여자친구 없냐? 내가 없다고 너도 없으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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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란
一喜一悲 | 2005. 7. 3. 22:06

Daum [만화속세상]에서 [달빛구두]를 연재중인 정연식 작가님의 2005년 3월 24일자, (포스터)이다.


첫사랑이란,

앞으로 겪을 사랑에 대한

예방주사 같은거에요.

혹독히 겪을수록

면역이 강해지죠.





영화나, 만화나, 유행가나, 어떤때는 뻔한 내용이 지겨워서 보기 싫은 드라마까지도,


그 대사 중에 어떤 것들은 가끔식 가슴 한구석을 얼음송곳으로 후벼파는 느낌을 안겨준다.


지금이 장마비가 한창인 여름이라도 말이다.


요새는 피지도 않는 담배라도 있으면 날아갈 연기로나마 막아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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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學生'들에게 -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一喜一悲 | 2005. 7. 1. 01:39
   4.19.를 부르는 말은 현재 ‘혁명’이라는 단어로 통일이 되어 있다.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에는 4.19.의거라고 불리웠고 그 이전에는 4.19.학생혁명, 4월 혁명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있었다. 이 중 4.19. 학생혁명이라는 명칭에, 왜 ‘학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가. 바로 당시 고 김주열 학생의 사체 발견과 고려대학생 3000여명이 의사당 앞에서 벌인 연좌시위가 그 불꽃이 되었기 때문이다.

(君이란 표현이 일본식이기 때문에 학생이라고 표기. 실제 지방 등을 작성할 때에도 고인에 대한 예로 學生이라고 표기함.)


   당시 그들의 의식은 4.19. 혁명이 대변해 주듯이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그것을 희망적인 것으로 바꾸어 나갈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아는 자들의 그것이었다. 또 그들은 어떤 이익집단이 아니라 바로 국민들에게서 나라의 미래를 밝혀 주리라는 기대를 받고, 그에 부응하는 사명의식으로 학문에 매진하던, 바로 ‘學生’이었다.


   하지만 지금 비춰지는 ‘學生’의 모습을 현재 ‘大學生’인 나의 시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부모세대께서 이룩해 놓으신 혜택들을 마음껏 누리는 우리의 대화와 행동에서 역사와 조국에 대한 사명의식은 나온 적이 없었으며, 우리의 눈과 귀가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을 외면한지는 이미 오래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사라지고 방종과 이기심만이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다.


   이것이 과연 이때까지 키워준 사회의 잘못이라고만 할 것인가. ‘學生’은 옳은 것을 배우고 내면의 치열한 성찰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어찌 우리가 옳은 것을 배우려 했고 가혹한 자성(自省)을 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단지 개인의 행복만을 ㅤㅉㅗㅈ아가려 하지 않는가. 그렇게도 외쳐대던 大韓民國은 그저 신명나는 응원도구, 그것밖에는 되지 않는 것인가.


   우리의 大韓民國은 결코 강대국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태어났고, 우리가 자라났고, 우리가 키워나갈 이 나라는 언제까지나 ‘우리나라’이다. 배움의 길은 고독하고 힘들고 끝이 없지만 그 길이야말로 ‘우리나라’를 강대국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그 길의 방향이 자신만을 향해 있다면 영원히 이 ‘답답한’ 나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청년들이여. 나 또한 학생이고 우리 모두가 학생이다. 우리가 이 나라의 돛이 되어야 한다. 大韓民國이라는 배를 시대의 바람을 타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가슴깊이 생각해보자.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게 하자. 언젠가 우리가 정말 뿌듯함을 느끼는 때가 온다면, 그제야 우리는 자랑스럽게 이 나라의 등불인 ‘學生’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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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헷, 전역했다.
一喜一悲 | 2005. 6. 13. 00:30


 

헤헷, 나도 드디어 예비역이다.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인정한 신체 건강한 1급 청년으로서, 2년여의 군생활을 마치고 육군참모총장의 인정을 받은, 우리나라의 당당한 예비역이다...ㅋㅋ

날짜로는 11일부로 전역을 한 것이지. 전역하고 나오자마자 부모님하고 주왕산에 다녀왔으니, 새 출발의 첫날은 집에 있지 못했군...-_-


뭐, 아무래도 좋아. 그저 전역했다는 사실 하나로 기쁘기만 할 따름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은 둘째치고서, 이제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압박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해방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뭐라도 이룰수만 있을 것 같다.


남자나이 22살이면 적은 나이가 아니지. 세상을 향해서 내 포부를 펼칠 수 있는 나이이지.

뭐, 그래봐야 아직은 미약하겠지만...


세상아, 긴장하라구. 내가 간단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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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현역 육군으로서의 마지막 시간
一喜一悲 | 2005. 6. 8. 08:56

오늘이 마지막 휴가 복귀이다.

이미 내 모자에는 예비역 마크가 박음질 되어있지만 아직은 현역이고, 지금 나와있는 것은 휴가이기에 오늘은 들어가야 한다.


뭐, 별다른 감흥은 없다. 이제 나의 인생에서 두번째 탄생을 위한 대한민국 뱃속에서의 시간은 끝났다라고 느낀다면 조금 많이 미화한 것이고...그저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라는 느낌이다. 이등병때에는 전역이란 것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도 없었고, 일병/상병때나 미치도록 부러웠던 것이 전역자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내가 그 입장이 되었다니, 정말 순식간이다.


어제 친구하고 통화를 했다.

'...근데 요새 학교에 02학번 애들이 없다. 너라도 빨리 올라와라. 심심하다.'

'야, 어차피 우리가 군대를 일찍 가서 그런거고, 나머지들도 지금 부대안에서 시간 안 가 지겨워하고 있을걸? 내년에 다들 복학하면 모두 모일텐데 뭘.'


웃으면서 한 이야기지만, 이제 다들 군대라는, 어떻게 보면 젊음의 도피처이자 그 말랑말랑하여 굳어지지 않은 생각을 익혀주는 오븐 같은 곳을 나왔으니, 우리 이제는 삶에 바빠져야 하지 않겠느냐...하는 그런 의미기 담겨있었다. 입대일자가 남보다 이른 관계로 내 밑으로 들어온 후임병 중에는 거의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나를 부러워한다. 정신차리고 삶에 집중하는 시기가 1~2년 빠르다고. 그때마다 내가 해준 이야기는

'짬밥도 쌀밥맛을 알아야 느낄 수 있는 법이야.'


지금까지 군대 어려운 것만 알았으니, 이제는 세상이 따끔한 줄도 배워야겠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짬밥맛을 알았으니, 쌀밥의 깊은 맛을 느끼는 법은 이미 내 몸속에 터득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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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라와있는 것.
一喜一悲 | 2005. 6. 7. 21:05

이우성.

李愚星.

Yi woo sung.


생각은 많다고 생각하고,

재능도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도 잘 한다고 생각하고,

문명의 이기를 좋아하고,

자연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그러면서도 살아가는 존재요.

----

이런걸 원하는가?

1. 이름 : 이우성

2. 성별 : 남자

3. 나이 : 돼지띠. 알아서 계산해보시도록.

             참고로 05년도에 22살이구랴.

             아, 미리 이야기 하는데, 나 1월생이라오.

             1년 일찍 학교 들어갔다는 말이지. 갸웃거리지 말 것.

4. 사는 곳 : 우성이 사는 곳.

5. 키 : 우성이만한 키.

6. 몸무게 : 우성이만한 몸무게.

7. 학교 : 우성이 다니는 학교.

8. 가족관계 : 우성이 가족.

9. 취미 : 우성이 취미.

10. 특기 : 우성이 특기.

11. 핸드폰 : 어쩌구-저쩌구-와글와글

                헷갈리는지? 무단도용 방지임.

                 생명보험가입하라고 전화오면 기분 나쁠테니까.

12. 그 외 : ...씩이나 궁금하신지? 그럼 직접 물어보시든지.

               망설이지 마시길. 언제나 친절하게 답변해 드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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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블로그 돌아다니다 보면...
一喜一悲 | 2005. 6. 5. 01:45

싸이월드의 고정된 조그마한 창, '중인소로여든 소인대로하라'라는 말을 내 신조중의 하나로 삼고 있기에 화면전체를 쓰는 다음 블로그를 쓴 이후...(이것도 바꿀듯...)


저기 오른쪽 위쪽에 [낯선 블로그]라는 링크를 돌아다니는 재미를 들였다.

좋은 글들도 많고, 재밌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데...


음란물 게시하는 사람.

부동산 업계 광고하는 사람.

블로그 첫장에 여러 게시물에서 노래가 한꺼번에 나오게 하는 사람.

별 내용 없으면서 화면 맨 끝에까지 내려보게 하는 사람.

기나도들, 예수천당 불신지옥주의자들.(기나도 = 기나 도를 아십니까 라는 질문을 할 듯하는 사람)

...

..

.

쉣더퍽. 엿이나 들고 즐 쳐드셈.


신고제도 없나?

좋은 내용 찾아서 부모님 보여드렸는데 다음 낯선 블로그가 음란물일때의 당황스러움을 너희는 아냐?

땅 사라고? 꼭 블로그에서 광고해야겠어? co.kr은 괜히 있는 도메인인줄 알아?

블로그 첫장에 노래 가득 실어서 화면도 늦게 띄워지게 하고 기껏 뜬 화면에서 각종 노래가 짬뽕이 되어서 나올때. 이런거 보통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인터넷 배우면서 글 올리실때 잘못 올리신듯 한데... 조금만 신경써주시면 되나이다. 소스편집으로 들어가서 autoplay를 off 로 해주시면 되나이다.

안 그래도 가운데 손가락 휠 움직이느라 고생 많은데 엔터키로 글 쭉쭉 내려가는 인간. 튼튼해진 내 가운데 손가락으로 엿이나 쳐드셈. 凸-_-+

우리 아버지 안 그래도 기독교 믿는 여자하고는 결혼도 하지 말라는 분이셔서 회유하려 애쓰는데, 아버지가 보시는데 뭐? 예수천당 불신지옥? 쉣더퍽. 그런 하나님이라면 나 또한 즐.

...

..

.

인터넷이니까.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니까. 내가 이해를 해야지.


젠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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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서태지
一喜一悲 | 2005. 6. 5. 00:38

나도 서태지가 좋다. 팬의 입장에서.

음악적인 소양?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예술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쓰레기라고도 하더라.

하지만 난 그냥 내 귀에 듣기 좋은 음악들, 들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그의 음악이 좋다.

취향이란게 언제 바뀔지도 모른거고, 나도 모르는 새 나빠지는 내 청력을 믿고 싶지도 않다.

빠순이? 빠돌이?

서태지에게 향해서라면 난 그런 은어를 감수할 용의가 있다.


--------------------------------------[원본 내용]------------------------------------








남들 공부할 때 공부 때려치고 자기 꿈을 찾아간 용감한 사람.

긴머리를 자른 후 지하철 타도 아무도 안쳐다 본다며
좋다고 뛰어 다니는 순수한 사람.

고집불통, 일명 똥고집이라 불리는 사람.

핸드폰을 10000원에 팔라는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

밥한번 사라니깐 쓰러져가는 삼겹살집에서 밥사는.. 지독한 구두쇠 같은 사람.
그래서 서쿠르지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사람.

방송 외에는 하얀박스T와 츄리닝 바지 하나로 사는 멋모르는 사람.
그러나 방송에서는 유행 창조자인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

단 한번도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항상 입가의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지갑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말에
"그럼,지갑만 가지고 다니죠?" 라고 말하는 사람.

기다림에 지친 우리들에게 베시시 웃으며
"보고 싶었어요"라고 해서 미워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

자기가 웃기다고 우기는 사람..

자기 키가 187,8이라고 말하는 뻔뻔한 사람.

춤추는 것보다 기타 들고 뛰어다니는 게 더 멋있어 보이는 사람.

삼각형팩 커피우유를 서로 먹겠다고 코디와 싸우는 욕심 많은 사람.

자신이 절대 여자 같지 않다고 하는 사람..
그래서 터프하다고 우기기도 하는 사람.

몇년동안 병마와 싸우는 팬에게 약 꼭~챙겨먹으라고
음성남겨주는 따뜻한 사람.

그 팬을 마지막으로 본 9월.....
한없이 우는 그 소녀에게 먼저 손내밀어 눈물 닦아 주던 사람.

춤연습하다가 틀리면 양군이 슬리퍼 날린다고 징징거려도
무대에만 서면 곧잘 하는 무대체질.

집에 찾아온 팬들에게.."여자가..."하며
깔고 앉을 신문을 한뭉탱이 주는 배려 깊은 사람.

스피커폰으로 대문 밖의 팬들 얘기를 엿듣는 게 취미인 사람..
태지내꺼야 하는 말에 고개 빼꼼 내밀고
"나 우리 엄마아빠 꺼야."라고 말하는 아직도 어린 사람.

팬들이 써 놓은 담벼락의 낙서들
후레쉬 들고 나와 다 읽고 글 남겨 주는 따뜻한 사람.

집으로 걸려온 팬의 전화...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우는 소녀에게
'I LOVE YOU'라고 말해주는 사람.

대문밖에서 기다리는 팬들
인터폰으로 엿듣다가 기어코 같이 수다떠는 수다쟁이.

자기방 창문에 대문짝~만하게
'태지 없음' 써놓은 장난꾸러기.

커텐뒤에 숨었다 나타났다 장난하다
애들 꽥꽥~소리질러 동네 아찌들에게 혼나게 만드는 얄미운 사람.

곡작업하는 6개월 동안 집밖에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음악할땐 독하다 못해 무섭게 하고야 마는 강한 사람.

수정하랬더니 삭제해버리는 멋진 악동 같은 사람.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짐을 짊어매야한 했던 불쌍한 사람..

팬레터 옮기다 떨어뜨렸다고 화내는...
팬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떠나가기전 우리 마음이 담긴 팬레터가
남의손에 쥐어지는게 싫어 눈물삼키며..태워버린 사람.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배려해 주었던 착한 사람..
그래서 사랑스러운 사람..

사람들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는 사람.
그래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그러나, 항상 행복하다는 사람.

그래서 마지막도 예상 못하게 했던 사람..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강해 보이려 했던 바보 같은 사람..

그래서 눈물도 보이지 않으려 제일 먼저 우릴 돌아선 무심한 사람..





밤마다 별들보면서 우리생각했다는 사람.

미국에서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컴퓨터키고 우리애들 잘 지내나 둘러 봤다는 스토커..

많이 기다렸다면서 누구에게도아닌 우리에게 먼저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사람.

우리가 그리워서... 밤새도록 우리가 써놓은 글하나하나에 눈물 흘릴줄아는 사람. 컴백 발표 전날 ..
밤새 눈물로 지새우는 우리애들 글 읽으며 같이 눈물 흘렸다는 바보.





2000년 9월 9일...
4년7개월 만에 만나는 우린데..
목이 메어 차마 '안녕' 이란 말도 꺼내지 못했다는 여린사람.

한국와서 처음 들은 소리가 기자들에게 들은...
"야 !!이 새꺄 거기서!!"
그래도 우리 생각하며 웃는다는 사람.

6집 앨범은 4년7개월 동안 눈물로 지낸 우리애들에게 앨범 무료로 나눠주고 싶다고 제안했다가
음반/유통협회로 부터 죽일놈 소리 들은 안쓰러운 사람.

빨간레게 머리...
미장원가는 돈이 아까워 백댄서들 밤새 머리 따게 만드는 짠돌이 서쿠르지.

밤새며 기다리다가 비라도 올까 걱정되서 천막까지 쳐달라고 부탁하는 사람.

밤새 추위에 떨까 걱정되어 게릴라 같이 녹화하고,
공연못보고 돌아갈 팬들생각하면 안타까워 자기는 링겔맞아가면서도 2번공연하고마는 사람.
밖에서 자기 걱정에 울었다는 팬들 생각해서.. 안아프다고, 걱정말라며 애써 웃음짓는 사람.

이뻐서 쳐다본다며.. 5년동안 훌쩍 커버린 우리모습을..
눈에 담아두려고 하는 사람.

직접 못만나줌에 안타까워 밤새도록 인터넷 서핑으로.. 우리말에 귀기울여주는 사람.

시간늦춰짐에 기다리는 팬들에게미안해 사서함 예고편까지 이쁘게 남겨주는 사람.

뒤에있는 팬들 보고싶어서.. 경호원 손도 뿌리치고 우리에게로 오는 사람.
매니저, 경호원이 아무리 막아도 팬들이 챙겨온 편지,선물은 꼬~~옥 챙겨가는 사람.

공연에서 다쳤다는 팬들 치료비도 먼저 지불해 놓는 사람.

자기로인한 돌이키지못할 소모전에.. 힘들어하는 우리한테 즐겁게 저항하라고...
보듬어주는 사람.

슬래머들로 인한 팬들의 상처땜에.. 기대이상이라며..멋있다며..
칭찬으로 우리를 위로해주는 사람.

언론과 메스컴에 무응답으로 대해도
우리앞에선 말도많고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귀여워지는 사람.

다른사람이 말하면 듣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라면먹지말라는말에.
바로 순두부찌개 먹는 사람.

목말라하는 우리들을 위해 물도준비하고..
쓰러질지도 모를 우리를 위해 엠블란스도 준비하는 사람.

우리얼굴보고싶어서..
조명켜달라고... 수줍게 말하는 사람.

'나 매일 새벽 4시 이후에 컴하니깐 게시판에 욕도하지말고 이쁜말만 써'
라고 협박하는 사람..

경호업체와 계약할 때,,
우리애들 경호까지 부탁한.. 애들 잘챙기는 사람.
우리애들한테 소리 지르지도 말고 반말하지말고 함부로 대하지말고 나보다 더 챙겨달라는 요구사항 많은 사람.

자기보고 놀라 멍하니 말못하고 도로변에 서있는 팬이 걱정되 손잡아 데려오면서
'뒤에 차오잖아 조심해~'라고 걱정해 준 사람.

수많은 남자 매냐들을 위해서 사서함 호칭을 '태지오빠 & 태지형'으로 써준 사람.

다른일엔 너무도 무심하면서도..
팬들 일에는 너무도 민감한 사람.

사랑하는 사이엔 고맙다는말 하지 않는거라고...
너넨 내 사랑 그냥 받기만 하라는 사람.

미국가서 좋은음악 만들어서 꼭 올꺼라고
좋은음악 아니면 '날 죽여'라고 말하는 자신만만한 사람.

노래로 우리를 칭찬해주면서 노래로 우리를 꾸짖기도하는 사람.

삶의 지표를 잃고 힘들어할
우리를 위해..
나침반친구가 되어주겠다는 사람.

너네 기대 이상이야
너넨 수천수만의 또다른 서태지 라며
우릴 매니아로 불러주는 사람.

아무런 위로없이
이시대의 속도감을 이겨온 우리에게
이젠 위로와 약속이 되어주겠다고 말하는 사람.

우리 운 다음에 운다며..
울지말라고 말하고싶으면서도..
결국 말못하는 바보같은 사람.



<2004년 제로 전국투어 공연 중에서>

여러분들은 정말 13년동안 하나도 안변했어요.
나도 안변했고..
내가 여러분이 조그만 아가일때 마법을 걸었거든..

너희들 다 내 새끼들이야..
내가 잘 키웠어..

불행할때가 있어도 행복해야해요.
정 불행하다 느끼지면 모든것을 제로로 돌려버리고,
리셋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작하면 되요.



 


<배경음악 무단사용해서 그분?께죄송^^.. 문제되면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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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그리고 장남 이야기 with 아버지
一喜一悲 | 2005. 6. 3. 03:27

거실 스피커 때문에 낮부터 이리저리 부품사러 돌아다녔다. 땜질 좀 하다 보니 아버지 오셨고, 아들된 도리로 당신께서 아들과 같이 이것 저것 하는 재미를 귀찮다고 할 수도 없어 그대로 보고 따라서 마쳤다. (솔직히 아버지께서 먼저 보여주시면 얻는게 꼭 있다. 그것이 좀 지겹기는 해도.)

아버지께서 잠이 안 오셨는지 고스톱이나 치자고 하시길래 어머니하고 셋이서 몇판 돌았나부다. 중간에 술이나 한 잔 할까...하시는데 뭐, 나도 오늘따라 술이 당기더라. 밖에 나가서 마시는 것이 더 좋았지만 안에서 드시자는데야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조용히 주안상을 보고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아버지 옆에 가만히 앉아계시고.


처음이야 좋지. 나 같아도 내 아들내미하고 술 마신대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나는 그리 안 할지도. 왜냐고? 내가 해보니까 그거, 할 만한게 아니더군. 아버지 생각을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자식 입장이어서, 더욱이 장남이기 때문에 내 생각을 이야기 할 수가 없더군. 언제나처럼 내 생각을 이야기해보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미 결정을 보신 사항이라 내가 치고 들어갔다간 옆에 계신 어머니만 힘들어지시지. 아니, 이제는 내가 힘들어 질래나? 군대도 다녀왔겠다, 더 이상 내 편을 들어주실 이유가 없거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그래도 지아비를 따라가는게 아내의 도리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니까 나를 타이르거나 혼내시거나 둘 중이 하나실거야.


나중에는 내가 하소연하는 식으로 (언제나 똑같았어.) 내가 장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입장을 돌려말씀드렸지. 그런데 항상 당하면서도 까먹었지 뭐야. 나에게 돌아오는 답변은 그런 부담주기 싫다고 하시는, 하지만 더 큰 부담을 지워주는 그런 이야기들.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제가 아들하고 이야기를 한다면 '너는 장남이다. 그건 니가 풀을래야 풀을수 없는 사슬과 같은 것이니까 그것을 벗어나는 생각과 행동을 하려 하지 말고 그 안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라고 말할 것 같아요." 라고 말씀을 드렸을까.


아...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군대를 다녀와서 그런가.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냥 그런 것인가. 그냥 오늘은 이런 불효스런 생각이 드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내가 효도하는 것은 있지. 적어도 장남이기에 당신의 생각에 반발하고 뛰쳐나가지는 않지 않습니까. 하긴, 아버지, 아직은 그것이 제게 피해가 더 많기 때문이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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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샀다~
一喜一悲 | 2005. 5. 27. 13:57

핸드폰 샀다.

드디어 세상과 연결된 듯한 느낌이다.

낚시줄도 아니고...내가 뭐하는 생각인지.

뭐, 있으니까 좋긴 하다..^^;

번호는...공1공-??3일-칠12공...??는 알아서 맞춰보시구랴. 무작위로 골라보면 100번안에 맞추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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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극일기
一喜一悲 | 2005. 5. 2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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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을 나와서 남극일기를 봤다.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듯한 최고급(?)영화관에서 스크린 밑의 무대에 약간의 화면이 반사되어 느껴지는 실감나는(?)입체효과를 느끼면서 볼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같이 영화를 본 나를 포함한 4명 중 좋게 평한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는 것.

심지어 어떤 학생은 나오면서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하더라.

"야, 내가 남극일기 방금 봤는데, 절대 보지마. 정말 영화 쉣이야."


영화의 대부분은 아니지만 중간 중간에 배경으로 나오는 남극의 모습은 솔직히 그냥 눈내린 벌판이었다. 색이라고는 흰색의 눈과 그림자뿐, 차라리 겨울의 툰드라벌판이 더 낳았다.

하지만 남극이 그런 곳이라 볼 수 있고 찍어서 보여줄 만한 것이 그것뿐이니, 남극일기라는 제목을 보고 자리에 앉았다면 그런대로 감상해줄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백미는 역시 송강호의 엄청난 연기력.

탐험대의 대장으로, 남들이 안 하는 것이며 못 하는 것을 함으로써 삶을 느끼는 인간으로, 그런 자신의 삶을 위해(혹은 비정상적인 부정(父情)일지 모르는) 혼자있기 외로워하는 아들에게 꾸중하는 아버지로 열연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서 다른 사람의 비판과 지적을 묵묵히 바라보고는 혼자서 불안해 하면서도 대장만을 쫓아가는 유지태에서 한 두사람의 의견을 따라가면서 뚜렷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하는(어쩌면 자신의 의견이 어떤건지 몰라서 침묵하는) 대중의 모습을 보았다.


한 조직의 리더로서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미쳐버림으로서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불안함을 심어주면서도 그 광기에서 나오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추진력으로 팀을 이끄는 송강호의 모습은...어딘가 모르게 매력적이었다.


예전에 조수연병장하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2인자가 되겠다고 했다. 앞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1인자보다는 못 하지만 많은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 편하게 살겠다고. 내 대답은 정반대였다. 나는 1인자가 되겠다고. 나에게 말한 지적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깊이는 더욱 더 깊고 비참해진다 하더라도 내 인생에 있어 1인자의 권력과 그 지위를 가질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 아니겠냐고.


영화의 마지막에 유지태가 먼저 도달불능점에 도착하고 송강호가 뒤이어 도착한다. 그리고 나서 송강호는 도달불능점 표식을 뽑아버린다. 유지태는 말한다. 당신이 그것을 없앤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송강호는 대답했다. 아니, 형식은 대답이지만 내용은 투정이었다. 왜 내가 계속 가자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냐고. 왜 아무말도 하지 않고 따라왔느냐고.(뭐, 정확히는 안 들렸다. 공장을 개조한 최고급(?)영화관이었기에.)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도달불능점. 그곳으로 가려면 미쳐버려야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사람의 마음에는 역시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해도 미쳐가는것이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말려줘본다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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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포상휴가, 부대복귀
一喜一悲 | 2005. 5. 11. 17:51

지금 원주의 그 유명한 피씨방, 아이콘이다.


일반 인터넷만 되는 자리는 500원씩 하는데다가 시외버스 터미널 바로 옆에 있어서 찾아오기도 쉽다. 그래서 원주지역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에게는 유명한 피씨방.


1군지사에서 근무했던 창현이도 내가 여기 이름을 말하니까 바로 알아들었다. 그 만큼 좁기도 한 것이 세상.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은 어떻게든지 서로 알고 있으니 내가 가는 곳이 여러군데가 아닌 이상에야 더 넓어지지는 않는 것.


아직도 부대 안에서 있어야 하는 날들이 십여일 남았지만 마치 전역한 기분이다. 집에 있었어도 예전처럼 어색하지가 않았고 부대에 들어가는 것도 부담스럽지가 않다. 말년 병장이란 바로 이런 것?^^;


지난 2년간 참으로 잘 버텨온 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많이 치이고,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심난했던 시간들. 으윽,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덕분에 많이 깨닫고 많이 느꼈지만 역시나 군대는...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안 갈 수 있다면 [반드시] 가지 말아야 할 곳이다.


복귀할 시간이 다가온다.


이번 휴가때는 심난한 일이 있었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별의별 일들이 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만 그런 일을 겪는 것이 아니고, 이런 경험은 한 번쯤 겪어보는 것도 상관은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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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을 만들다.
一喜一悲 | 2005. 5. 9. 23:22

지금 부대에 가면 양지사에서 만든 갈색의 양장 제본 일기장이 있다.


프랭클린 다이어리에 할 일은 적지 않고 그날 그날 일기를 쓰곤 하는데, 일기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자서전처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을 적는 것 뿐이다.


여기저기에 글을 올려두기만 하고, 그나마도 꾸준하지 않으니...어쩔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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