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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9   기록은, 증거다.


기록은, 증거다.
一喜一悲 | 2009.09.09 15:55

  두 가지 편집증적인 행위가 있다.

  기록과 분류.

  연속적인 시간에 따른 변화의 결과들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각이나 장소, 상황과 같은 기준에 맞춰 나눠 담는 것이 기록이다. 기록은 분류하는 행위를 내포하는데, 분류를 통해 만들어진 기록은 다시 분류될 수 있다.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기록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다시 분류가 이뤄지고, 이렇게 기록과 분류는 서로의 결과가 원인이 되어 반복된다.

  이런 분류를 통해 만들어진 이산적인 기록들의 자세함은 얼마나 세밀한 분류를 하였는가, 즉 몇 번의 분류를 하였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때문에 고도로 자세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가는 얼마나 깊게 분류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일반인의 그것을 뛰어넘는 경우 기록의 양은 어느 정도 증가하겠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평가를 듣기 위해서는 일반인과는 다른, 다소 편집증적인 기질이 있어야 한다. 기실 역사 속 사관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문자로 남기는 것에 대한 사명감이라고 하는 광의의 편집증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무리 자세히 분류를 한다 해도 분류심도가 깊다고 해서 더 높은 가치의 기록이랄 수 없는 것이고, 같은 분류심도를 가지는 기록이라고 해서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가치라는 것은 가치라고 느낄만한 요소를 제공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기록을 사용하는 자에게 있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는 기록자의 입장에서는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기록하는 순간에 기록자는 도저히 자신의 작업에 대한 가치를 알 수 없다. 기록자는 그 순간 단지 분류하고 기록할 뿐,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기록자의 몫이 아니다. 기록의 가치와 기록자에 대한 평가는 기록을 이용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판단되어지는 것이다.



  나는 일반인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의 일을 최대한 기록하려고 하지만,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분류는 기록이라는 행위에 이르지 못한다. 내 편의에 의한 분류는 필요할 때 하고, 평소의 기록은 그저 쌓아둘 뿐이다. 내가 평소 기록하는 수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각각의 수단이 가지는 편리함이나 보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곧 기록과 동시에 분류가 되느냐, 혹은 분류와 동시에 기록이 되는냐 하는 두가지 행위 간(間) 동시성의 문제와 일상의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동시에 기록과 분류가 가능한가, 내가 그 행위에 대해 얼마나 신경써야 하는가 하는 편의성에 대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사진은, 좋은 기록 방법이다. 기록과 동시에 시간에 의한 분류가 이뤄지며, 인지할 수 있는 시간에서의 인지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가 생기면서 사진기록이라는 방법은 이전에 비해 엄청난 편의성을 가지게 되었고, 이전에 성행하였던 글에 의한 기록을 대체하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블로거들의 페이지는 사진과 그 사진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모니터 반 이상을 넘어가는 글은 자극적인 뉴스나 수많은 한 줄짜리 댓글이 아닌 이상에야 마우스 휠에 희생당할 뿐이다. 다만 사진보다 글이 무조건 좋다는 발상은 아니지만,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음성과 영상 기록 또한, 좋은 기록 방법이다. 의식하지 않은 녹음과 녹화 기록에는 거짓과 가식이 없고 정확한 시간에 대한 보장이 있다. 다만 다시 확인하려 할 때 과거에 기록에 쏟았던 시간만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기록하는 목적이 언젠가 다시 확인하기 위함인데, 과거의 시간만큼 소요한다면, 어느 세월에 필요한 기록을 찾을 것인가? 인생사 80평생을 음원이나 동영상으로 기록했다고 할 때 인생 말미에 확인하고 싶다고 160까지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위의 두 기록 방법은, 분류에 고민하는 시간이 글로 기록하는 것에 비해 너무 짧다. 사진작가나 카메라감독 등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인들이 사용할 때를 감안하면 변화의 결과를 기록자의 의도대로 남기기 위해서 쏟는 시간과 정성이 아무래도 글로써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떨어지는 것은 사실 아닌가. 그런 기록이 분류라는 체를 걸러 남겨진 결과임을 생각해 볼 때, 정성이 부족하리라는 것은 끄덕일만한 의견이다.

  이런 저런 장단점을 늘어놓는다 해도, 어쨌든 기록이다. 이전 세대였다면 생각하지 못 할 방법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그 축복은 망각이라는 인간의 능력에 상반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기록은 증거가 될 수 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증거이고, 살아온 날들에 대한 증거이고, 지금까지 가졌던 인간성에 대한 증거이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보증이다.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만족과 불만, 사랑과 증오, 우정과 배신, 이상과 현실, 존경과 멸시...그런 증거들이 머릿속에 있을 수 있지만, 망각이란 기능으로 인해 언제까지나 확인할 수 있는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 하기에 글과 사진, 영상과 음악 등을 통해서 수많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 사람이다. 여기서 나는 의문이 생긴다.

  과연 지금 나는 제대로,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가? 문제는, 기록의 가치가 아닌, 지금과 지금이 변한 과거가 왜곡되지 않았는가, 나는 나의 기록 앞에 떳떳한가,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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