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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통계와 보도, 진실의 위치, 그리고 대인관계
2009.09.09   기록은, 증거다.
2009.09.03   변화에 대하여.
2009.08.25   다른 처방 내리기


통계와 보도, 진실의 위치, 그리고 대인관계
一喜一悲 | 2009.09.11 11:06

  우리는 얼마나 자극적인 것을 좋아할까?

  풍수학을 조금 살펴보면 물 근처에 집 짓는 것을 두 가지 경우로 구분하고 있다. 강이나 바다와 같이 유동적인 물 근처는 기가 통하거나 호연지기를 키우는데 좋다...뭐 그런 긍정적인 평가를 포함하지만, 호수와 못과 같이 고여있는 물은 음기가 고여있어 썩어들어가는 향취가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식의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그래서 호수 근처에는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자극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시각적, 청각적인 자극이 끊임없는 곳과, 바람이 불지 않는 이상 잔잔하기만 한 곳의 두 곳에서 사람이 버틸 수 있고 없고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은 일견 지혜로운 것처럼 보일지라도 네이버 검색어 순위나 신문제목들만 보더래도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단지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고 푸근하게 하고 화나게 하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들이 항상 위에 올라오고, 대부분 사람을 격하게 충동질하는 슬프고 화나는 기사들이 더욱 순위가 높다. 그리고 어떤 기사들이 그런 종류인지는 지금을 표현하는 키워드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몇 년 전부터 MB 라고 하면, 최고의 미끼라는 것에는 아무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그랬지만, 대통령이라는 높은 위치, 아무나 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소식은 사람들의 구미를 자극했다. 물론 전두환때처럼 다분히 목적성을 가지고 스스로 홍보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 보면 유치한 수법에 불과하다. 요새는 보도라는, 마치 객관적 진실을 알려준다고 착각할 수 있는 일방적 광고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실 나치 독일의 경우에도 3S라 하여 Sex, Sports, Screen 을 우민화 정책으로 제대로 써먹지 않았는가. 그 중 Screen 이 오늘날의 경우 아무렇게나 흘러들어오는 뉴스 기사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검증된 효과적인 우민화정책에 심리학적 요소까지 버무려서 대중의 앞에 가져다 놓으면, 어떨까? 가장 극적으로 그것을 증명한 사람이 나치 독일의 괴벨스이다. 99%의 거짓과 1%의 진실의 배합이 100%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이런 아름답지만 무섭고 인정하기 싫지만 수긍하는 사실을 밝혀내고 실험해 성공시킨 사람이다.

  3S는 Sex, Sports, Screen 이라고 했다. 추가로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3S 는 Sad, Sacrifice, Savage 의 세가지 경우가 아닐까 한다. 저 세가지를 너도 당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려면 동참해라 식의 선동은 엄청난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다. 거기에 사회과학의 정수인 통계, 표본집단을 입맛에 맞게 선택해 만족스런 결과를 보여주는, 마치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통계결과를 섞어서 가져다 놓으면, 대부분이 파닥파닥 낚일 것이다.

  http://stock.mt.co.kr/common/article_print.htm?no=2009091017384040017

  무슨 요리 레시피 같다.

  1. 단어선택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하지 못 하고 뭔가 있어보이는 단어가 좋지요.
    : 대통령, 청와대, 경호, 비상경제대책회의
  2. 물론 보는 사람을 고려해서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쉬운 단어도 같이 선택해야 합니다.
    : 재래시장, 서민, 시민들의 환호(이거 멋지군요, 사람들은 주변사람들과 유사하게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3. 여기에 약간의 감동과 신비적인 요소를 심어줍니다. 실제로 감동적인지는 필요없고, '그럴 듯' 해 보이면 됩니다.
    : 어제 꿈, 할머니의 울음
  4.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영웅적인 요소를 가미합니다.
    : 이동 자체가 쉽지 않을 정도, 수행원들이 놀랄 정도의 함성, 경호원 제지의 만류
  5. 지금까지 극적인 요소들을 배합했으니, 진실성을 나타내는 '듯'한 조미료를 첨가합니다. 숫자를 이용하는 것이 좋아요.
    : 9.3 개각 다음날, 2번째 방문, 40%대의 국정 지지도
  6. 여기에 데코레이션으로 마무리합니다.
    : 할머니와의 사진 ( 훌륭해요, 낮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 처리, 감싸안은 팔, 사진기를 향해 적당히 벌려 선 각도까지)
    : 옷가게 사진 ( 입어보는 듯한 연출이 아쉽지만,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

  비단 대국민선전뿐이랴, 일상 생활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나누는 대화에서도 켜켜이 쌓인 모든 자극을 가려내고 숨은 진실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추구할 것은 이런 기법들을 사용하지 않고 진심을 전달하는, 참으로 진실되게 사람을 대하는 법을 익히는 일이다. 그걸 안다면, 지금의 시대는, 반면교사랄 수 있지.

--
  그런데 나도 어쩔 수 없이 자극에 약한 인간이다.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7&docid=860668&qb=64KY7LmYIO2GteqzhA==&enc=utf8

  우리가 선이라 알고 있던 것들이 그렇게 선하지만은 않더라, 우리가 악이라 알고 있던 것들이 그렇게 악하지만은 않더라...난 기사들이 재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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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증거다.
一喜一悲 | 2009.09.09 15:55

  두 가지 편집증적인 행위가 있다.

  기록과 분류.

  연속적인 시간에 따른 변화의 결과들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각이나 장소, 상황과 같은 기준에 맞춰 나눠 담는 것이 기록이다. 기록은 분류하는 행위를 내포하는데, 분류를 통해 만들어진 기록은 다시 분류될 수 있다.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기록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다시 분류가 이뤄지고, 이렇게 기록과 분류는 서로의 결과가 원인이 되어 반복된다.

  이런 분류를 통해 만들어진 이산적인 기록들의 자세함은 얼마나 세밀한 분류를 하였는가, 즉 몇 번의 분류를 하였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때문에 고도로 자세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가는 얼마나 깊게 분류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일반인의 그것을 뛰어넘는 경우 기록의 양은 어느 정도 증가하겠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평가를 듣기 위해서는 일반인과는 다른, 다소 편집증적인 기질이 있어야 한다. 기실 역사 속 사관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문자로 남기는 것에 대한 사명감이라고 하는 광의의 편집증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무리 자세히 분류를 한다 해도 분류심도가 깊다고 해서 더 높은 가치의 기록이랄 수 없는 것이고, 같은 분류심도를 가지는 기록이라고 해서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가치라는 것은 가치라고 느낄만한 요소를 제공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기록을 사용하는 자에게 있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는 기록자의 입장에서는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기록하는 순간에 기록자는 도저히 자신의 작업에 대한 가치를 알 수 없다. 기록자는 그 순간 단지 분류하고 기록할 뿐,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기록자의 몫이 아니다. 기록의 가치와 기록자에 대한 평가는 기록을 이용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판단되어지는 것이다.



  나는 일반인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의 일을 최대한 기록하려고 하지만,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분류는 기록이라는 행위에 이르지 못한다. 내 편의에 의한 분류는 필요할 때 하고, 평소의 기록은 그저 쌓아둘 뿐이다. 내가 평소 기록하는 수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각각의 수단이 가지는 편리함이나 보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곧 기록과 동시에 분류가 되느냐, 혹은 분류와 동시에 기록이 되는냐 하는 두가지 행위 간(間) 동시성의 문제와 일상의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동시에 기록과 분류가 가능한가, 내가 그 행위에 대해 얼마나 신경써야 하는가 하는 편의성에 대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사진은, 좋은 기록 방법이다. 기록과 동시에 시간에 의한 분류가 이뤄지며, 인지할 수 있는 시간에서의 인지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가 생기면서 사진기록이라는 방법은 이전에 비해 엄청난 편의성을 가지게 되었고, 이전에 성행하였던 글에 의한 기록을 대체하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블로거들의 페이지는 사진과 그 사진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모니터 반 이상을 넘어가는 글은 자극적인 뉴스나 수많은 한 줄짜리 댓글이 아닌 이상에야 마우스 휠에 희생당할 뿐이다. 다만 사진보다 글이 무조건 좋다는 발상은 아니지만,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음성과 영상 기록 또한, 좋은 기록 방법이다. 의식하지 않은 녹음과 녹화 기록에는 거짓과 가식이 없고 정확한 시간에 대한 보장이 있다. 다만 다시 확인하려 할 때 과거에 기록에 쏟았던 시간만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기록하는 목적이 언젠가 다시 확인하기 위함인데, 과거의 시간만큼 소요한다면, 어느 세월에 필요한 기록을 찾을 것인가? 인생사 80평생을 음원이나 동영상으로 기록했다고 할 때 인생 말미에 확인하고 싶다고 160까지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위의 두 기록 방법은, 분류에 고민하는 시간이 글로 기록하는 것에 비해 너무 짧다. 사진작가나 카메라감독 등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인들이 사용할 때를 감안하면 변화의 결과를 기록자의 의도대로 남기기 위해서 쏟는 시간과 정성이 아무래도 글로써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떨어지는 것은 사실 아닌가. 그런 기록이 분류라는 체를 걸러 남겨진 결과임을 생각해 볼 때, 정성이 부족하리라는 것은 끄덕일만한 의견이다.

  이런 저런 장단점을 늘어놓는다 해도, 어쨌든 기록이다. 이전 세대였다면 생각하지 못 할 방법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그 축복은 망각이라는 인간의 능력에 상반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기록은 증거가 될 수 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증거이고, 살아온 날들에 대한 증거이고, 지금까지 가졌던 인간성에 대한 증거이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보증이다.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만족과 불만, 사랑과 증오, 우정과 배신, 이상과 현실, 존경과 멸시...그런 증거들이 머릿속에 있을 수 있지만, 망각이란 기능으로 인해 언제까지나 확인할 수 있는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 하기에 글과 사진, 영상과 음악 등을 통해서 수많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 사람이다. 여기서 나는 의문이 생긴다.

  과연 지금 나는 제대로,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가? 문제는, 기록의 가치가 아닌, 지금과 지금이 변한 과거가 왜곡되지 않았는가, 나는 나의 기록 앞에 떳떳한가,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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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대하여.
日新又日新 | 2009.09.03 10:42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1초 전의 대기의 온도는 지금의 대기의 온도와 다르고, 이에 따라 우리 몸의 상태는 1초의 짧은 시간 안에도 아주 많이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전과 다른 현재를 두고 우리는 어떤 것이 변화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정도와 변화 이후의 상태에 따라 긍정적인 변화일 수 있고 부정적인 변화일 수가 있게 된다. 생태계는 적자생존이라 하여 변화에 적응한 개체만이 살아남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주변 환경이 변하는 것은 봄이 여름으로, 여름이 가을로 변하는 계절의 변화처럼 1년여의 시간에 4번씩이나 바뀌는 변화가 있는가 하면 강산의 모습처럼 10년이 지나야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나마 이 정도의 변화는 준비하고 적응하기에 충분한 변화들이다. 그러나 매장 내에서 고객의 동선의 변화에 따른 소비 심리를 추정하는 일이나 컴퓨터 모니터에서 시선의 위치와 화면 변화에 따른 클릭 횟수를 측정하는 경우에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정보량과 이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량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대처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적당한 모델을 상정하고 실험하며 이를 적용하여 변화시켜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존의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에 따라 적응에 필요한 시간이 어떻게 변하는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UI를 구성하는데 있어 UX는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기존 사용자가 어느 정도의 경험량을 가지고 있는 과거와 유사한 방식의 새 것을 접했을 때에는 빠른 적응 시간과 적은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기존 사용자가 과거와는 매우 다른 방식의 새 것을 접했을 때 적응에 필요한 시간은 길 것이고 무의식적인 거부감은 상당할 것이라는 것은 어렵사리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존과 상당 부분 다른 후자의 경우 두 가지 진행 방향이 있다. 첫째는 기존의 것에 비해 현저히 나은 방식으로 사용자가 단점이라고 느낀 부분들을 과감히 제거하고 장점이라고 생각할 만할 부분들을 부각하거나 추가하여 이전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로부터 환영받는 경우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윈도우이다. 콘솔 명령 입력 방식에서 마우스를 기반으로 한 입력 방식은 이전과는 180도 다른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사용자들을 끌어당길 만한 편리함이 있었기에 현대의 컴퓨터 제어 방법은 대부분 마우스를 이용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둘째는 기존과는 현저히 다른 시스템인데 사용자가 적응하지 못하고 버려지거나 목표로 한 집단 중 소수에 의해서만 사용되는 방식이다. 힐리스 운동화라는 신발이 나온 적이 있다. 일반적인 운동화 뒤축에 바퀴가 달린 형태로서 도심에서의 새로운 보행 문화를 만들것이라는 신문기사까지 나오곤 했던 제품인데, 이제는 소수의 매니아들의 수집품 이상의 가치가 없는 제품이다.

  기존과 다른 새로움이 없다면 세상은 발전이 없다. 무수한 새로움들이 생겨나고, 버려지고, 선택되는 과정에서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 버려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경우 고수의 반열에 들 정도의 사람들은 공장처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다듬은 생각을 기반으로 괜찮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제품이란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전에는 어땠는지 충분히 조사하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필요한 기능과 사용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한다. 그것들을 모두 담고 있으면서도 기존의 사용자에게 거부감이 없으며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좋은 제품이다. 그리고 그러한 제품들이 살아남게 된다.

  혁명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성공한 혁명은 새롭게 제시된 것이 받아들여졌을 때이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기존의 것에 대한 파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변화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용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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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처방 내리기
一喜一悲 | 2009.08.25 03:12
  감기에 걸렸을 때 이불 속에만 있으면 더욱 심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몸이 으슬으슬할 때 누워있으면 편하긴 해도 오히려 머리가 아픈데, 땀을 좀 내어주면 오히려 감기가 빨리 떨어지던 경험을 몇 번 해보고 나서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니라 동생의 경우를 보고 알게 된 것이다.

  대전에 있었을 때이니, 대략 중/고등학생때였던것 같다. 내가 열로 고생한 것은 초등학교 이후로는 한 손에 꼽지만 내 동생은 열로 고생할 때가 많았다. 덕분에 우리집 구급함에서 해열제는 절대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동생은 언제나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고 좀 쉬는, 전형적인 열나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금방 낫는 것도 아니고 한 이삼일은 골골대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는 아버지께서 동생에게 해열제를 먹이지 않고 집 뒤 보문산으로 데려가셨다.

  몸에서 열이 나면 살갗이 예민해져 옷이 쓸리기만 해도 따갑게 느껴진다. 무릎이나 발목은 왜 그리 시큰한지 움직이기 힘들고, 근육은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아 조금 움직이는 것도 힘들게 느껴진다. 그 상태에서의 산행이라니, 힘이 든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를 악물고 산을 올라야 했을 것이다. 그런 동생을 데리고 올라가시는 아버지는 조금만 더 올라가자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을까. 그렇게 동생은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갔다오고 나서야 해열제를 먹고 한 숨 잠이 들었다. 그런데 평소대로라면 일어나도 아직 안 좋다, 어쩐다 해야 할 녀석이 자고 일어나니 아주 가뿐해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시면서 아버지는 아플 때 움직여서 낫게 해야할 때도 있노라 하시던 모습이 내 기억에도 남아있는 것 뿐이다.

  감기만이 아니다. 슬럼프, 침체기, 저기압 등등 기분 나쁘거나 일이 안 풀리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당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거나, 좀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의 조언과 다짐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될 때가 100% 였던가? 오히려 문제가 되는 부분을 좀 멀리 함으로써 못 보던 부분을 포함하여 크게 보게 되고,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이해하게 되고, 다시 끌어안기에 충분해질 정도로 여유가 생겨 괜찮아질 때가 분명 있다.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가위를 들고 가까이 다가서는 것 보다 선선한 창가에 올려놓고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이 나을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언제나 맞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하철 2호선 합정역의 광고판 중에는 파룬궁 광고가 있다. 중국의 수련법의 하나라는데 잘은 모르겠다. 아무튼 기공술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풍월을 주워담은 것들을 되새겨 보면 인간의 몸은 소우주요, 세상은 대우주로서 그 돌아가는 이치가 같다고 한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코웃음치고 돌아설 말이지만, 시행과 그에 대한 결과를 통해 보자면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말이다. 비단 감기 뿐이랴. 사회 돌아가는 것이나 사람 사는 것이나 내 몸 하나 건강하게 하는 것이 뭐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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